처음 배길몽 선생의 사진을 봤을 때만 해도 나는 솔직히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뭔가를 오래 붙들고 끝까지 밀어붙여 온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첫인상은 그의 글을 읽고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몇 줄만 읽어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괜히 센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끝까지 의심해 보고 본질을 파고드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나는 길몽웰빙치약 역시 그런 사람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점점 더 분명하게 하게 됐습니다.
배길몽이라는 사람을 알고 나서, 길몽웰빙치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배길몽 선생에게 먼저 끌린 것은 사실 치약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글이 먼저였습니다. 종교를 향해서도, 과학을 향해서도, 사람들이 너무 오래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들을 향해서도 그는 늘 정면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냥 남의 말을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보고 부딪히고 오래 생각한 끝에 자기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나는 그 점이 좋았습니다. 세상에는 말을 번듯하게 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기 생각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은 드뭅니다. 배길몽 선생은 적어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외모만 보고 가졌던 인상은 그의 필력 앞에서 금세 힘을 잃었습니다. 문장 몇 줄에 사람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사람에게는 있었습니다.
더구나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단지 지적 자극만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도록 내 삶의 안쪽을 묶고 있던 어떤 관념, 특히 종교라는 이름으로 너무 깊이 들어와 있던 압박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경험도 했습니다.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이후로 나는 전보다 훨씬 더 내 삶을 내 시선으로 보게 됐고, 하루하루를 전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배길몽 선생이 치아보다 잇몸을 먼저 봐야 한다고 했을 때도, 나는 그 말을 허황된 주장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다운 문제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길몽웰빙치약은 사람을 연구해서 만든 치약이 아니라 자연의 동물을 연구해서 만든 치약이다
길몽웰빙치약의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다릅니다.
보통 치약은 사람의 생활습관과 기존 치의학의 통념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를 어떻게 더 잘 닦게 할 것인가, 입안을 어떻게 더 상쾌하게 할 것인가, 거품과 향과 세정감은 어떤가. 대체로 이 틀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런데 길몽웰빙치약은 방향이 다릅니다.
배길몽 선생은 사람부터 본 것이 아니라 자연의 동물을 먼저 봤습니다. 왜 야생동물은 평생 칫솔질을 하지 않아도 치주 문제로 크게 시달리지 않는가. 왜 인간은 이를 닦고 또 닦으면서도 잇몸 때문에 고생하는가. 왜 어린이는 성인과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치석과 잇몸 상태에서 차이가 나는가. 이런 질문을 오래 붙들고 들어간 끝에 길몽웰빙치약이 나온 것입니다.
이 점이 내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길몽웰빙치약은 단순히 성분 하나 더 넣고, 향을 바꾸고, 패키지를 바꿔 나온 제품이 아닙니다. 애초에 출발하는 관점이 다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이미 굳어진 방식 안에서 조금 보완한 치약이 아니라, 자연을 다시 보고 거기서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선에서 출발한 치약입니다. 그래서 길몽웰빙치약을 일반 치약처럼 이해하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배길몽 선생의 생각을 따라가 보면, 문제의 중심은 치아 표면만이 아니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잇몸에 있습니다. 치아가 전면에 보인다고 해서 치아만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결국 치아를 오래 지탱하는 것도 잇몸이고, 나이가 들수록 더 먼저 흔들리는 것도 잇몸입니다. 길몽웰빙치약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만들어진 치약입니다.
길몽웰빙치약은 왜 사용법부터 다르게 말하는가
길몽웰빙치약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사용법입니다.
이 부분을 빼고 말하면 길몽웰빙치약은 그저 조금 특이한 치약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길몽웰빙치약은 일반 치약처럼 칫솔 위에 짜서 거품 내고 문지른 뒤 바로 헹궈버리는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배길몽 선생이 권하는 방식은 분명합니다.
치약을 입에 직접 짜서 혀로 치아와 잇몸 사이에 고르게 바른 뒤, 잇몸 부위를 20~30초 두드리고, 이어서 20초 정도 눌러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잇몸에 좋은 성분이 잇몸에 잘 스며들게 된다는 것이 길몽 선생의 생각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길몽웰빙치약은 일반 치약과 갈라집니다.
이를 닦는 감각보다 잇몸에 좋은 성분이 잇몸에 잘 스며들게 하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지 입안을 개운하게 만드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잇몸을 중심으로 관리의 방향 자체를 바꾸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길몽웰빙치약은 처음 쓰는 사람일수록 ‘왜 이렇게 써야 하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낯섦 속에 이 치약의 출발점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 점 때문에 길몽웰빙치약을 가볍게 볼 수 없었습니다.
보통 제품은 누구나 익숙하게 쓰게 만드는 쪽으로 갑니다. 그래야 팔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길몽웰빙치약은 반대로 익숙한 방식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쓰는 방식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건 판매자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자의 생각이 그만큼 분명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길몽웰빙치약은 편하게 팔기 위해 타협한 치약이라기보다, 자기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려는 사람의 치약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나는 길몽웰빙치약을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배길몽 선생의 생각을 너무 세게 드러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반발부터 할까 봐, 표현을 눌러서 이야기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방식으로는 길몽웰빙치약의 본모습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몽웰빙치약은 무난한 말로 포장해서 팔기 좋은 제품이 아닙니다. 왜 이런 치약이 나왔는지, 어떤 시선과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비로소 길몽웰빙치약답게 보입니다.
내가 지금도 길몽웰빙치약에 마음을 두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 치약 안에는 단순히 성분표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오랫동안 붙들어 온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다시 묻고, 자연을 다시 보고, 치아보다 잇몸을 먼저 보려 했던 시선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영업문구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길몽웰빙치약을 대할 때도 자꾸만 제품 하나 이상으로 보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배길몽 선생의 바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치약을 한 번 팔고 끝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오래 붙잡아 온 생각이 헛된 것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사람들이 너무 오래 당연하게 여긴 것들을 한 번쯤은 다시 보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끝에 길몽웰빙치약이 제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치약 안에 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제품 소개가 아닙니다.
어찌 보면 나 자신의 고백에 더 가깝습니다. 나는 처음에 배길몽이라는 사람을 외모로 먼저 보았지만, 결국은 그의 문장과 통찰로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길몽웰빙치약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길몽웰빙치약은 그가 쓴 또 하나의 글입니다. 다만 종이 위에 쓴 글이 아니라, 잇몸 위에 닿도록 만든 글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길몽웰빙치약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길몽웰빙치약 홈페이지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
- 잇몸치약 아직도 이를 닦고만 있습니까? 길몽웰빙치약
- 길몽웰빙치약, 왜 치약은 넘쳐나는데 치과는 더 많아질까 치아보다 잇몸이 먼저인 이유
- 우리는 왜 매일 칫솔질을 하는데도 잇몸질환이 생길까? 닦기의 한계,벌어진 틈,야생동물이 던지는 힌트